민수기 25장에 나오는 바알브올 사건을 아시나요?
가나안 땅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입니다. 40년 광야를 버텨온 이스라엘이 마침내 결승선 앞에 섰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타락이 일어납니다.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3,000년 전 광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신앙의 이야기입니다.
- 바알브올 사건이란 무엇인가 — 민수기 25장의 배경
'바알브올(Baal-Peor)'은 브올 산당에서 섬기던 가나안의 우상 이름입니다. '바알'과 '브올'의 합성어로, 성적 제의와 깊이 연결된 우상이었습니다.
광야 여정의 마지막에 다다른 이스라엘은 하필 이 신을 섬기는 모압·미디안 족속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그 접촉이 재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다 됐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 죄는 혼자 오지 않는다 — 음행에서 우상숭배까지
처음엔 단순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는 곧 신들에게 절하는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제사 음식을 먹고, 우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개인의 일탈이 공동체 전체의 우상숭배로 번졌습니다.
이것이 죄의 파생성(派生性)입니다.
죄는 결코 혼자 오지 않습니다. 작은 문 하나를 열어두면 더 큰 것들이 줄지어 밀려 들어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문을 열어두고 계십니까? - 지도자의 실수가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 시므리 사건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하게 명하셨습니다. 죄를 선동한 수령들을 처형하라고요.
그러나 모세는 그 명령을 '가담한 자들을 처벌하라'는 말로 축소해 전달했습니다. 인간적인 연민이었겠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징벌이 느슨해지자 백성들은 더 담대해졌습니다. 전염병이 돌아 24,000명이 쓰러져 가는 상황에서도, 지도자 시므리는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회중 앞에 버젓이 나타났습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도다" — 전도서 8:11
죄에 관대한 공동체는 결국 죄가 지배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교회도 가정도, 개인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 비느하스의 결단 — 거룩한 분노가 공동체를 살린다
절망적인 순간, 한 사람이 일어섰습니다.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Phinehas) 입니다. 그는 창을 들고 범죄한 남녀를 즉결 심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24,000명을 쓸어가던 전염병이 멈추었습니다.
비느하스의 행동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충동적인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담은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향한 열심
공동체를 향한 진정한 사랑
죄와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결기
한 사람의 거룩한 결단이 수천 명을 살렸습니다. 오늘 그 비느하스가 당신이 되어야 합니다.
- 발람의 계략 — 보이지 않는 영적 전선을 경계하라
이 사건에는 숨겨진 배후가 있었습니다.
민수기 31장 16절과 요한계시록 2장 14절은 바알브올 사건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선지자 발람은 이스라엘을 정면으로 꺾을 수 없자, 모압 왕 발락에게 전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께 죄를 짓게 만드는 것, 이른바 '내부 붕괴 전략' 이었습니다.
영적 싸움은 항상 이렇게 옵니다.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강한 곳이 아닌 가장 약한 곳을 노립니다. 유혹은 언제나 자연스럽고 무해해 보이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당신의 가장 약한 곳은 어디입니까? - 오늘 우리 곁의 바알브올 — 스마트폰 시대의 유혹
모압 여인은 더 이상 국경 밖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바알브올은 우리 손 안의 스마트폰 속에 있습니다. 클릭 한 번, 스크롤 한 번으로 문이 열립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문이 열리면, 죄의 파생성은 어김없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보는 것부터 지키십시오.
죄는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자리 잡고, 결국 행동으로 터져 나옵니다. 시므리처럼 죄를 당당히 드러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비느하스처럼, 거룩한 결단으로 즉각 끊어내십시오.
마치며 — 결승선 앞에서 더 긴장하라
바알브올 사건이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경고는 이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다 왔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광야 40년을 버텼습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결승선 바로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익숙함이 긴장을 풀었고, 풀린 긴장이 죄의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신앙생활이 익숙해졌습니까? 예배가 루틴이 되었습니까? 말씀이 감동이 아닌 의무가 되었습니까?
바로 그 자리가 바알브올이 찾아오는 자리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고린도전서 10:12